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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생의 영화리뷰

영화를 보고 난 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 '조커' [약 스포리뷰]

 

 

나는 내가 어떤사람인지 모른다.

나는 다 큰 성인이고, 분명 '자아'라는 것이 존재할텐데 내 자신이 어떤사람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어떤 행동들을 싫어하는지, or 좋아하는지.

나는 지금 웃고있는 이 웃음이 정말 행복한 웃음인지, 억지 웃음인지.

나는 어떤 음식을 싫어하는지, or 좋아하는지.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싫어하는지, or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이성의 스타일을 싫어하고, or 좋아하는지.

나는 이성을 좋아하는지, or 동성을 좋아하는지.

 

저렇게 흔하디 흔한 여섯가지의 지문중에 제가 '100%' 확신할 수 있을만한 지문은

불행하게도 단 한가지도 없다.

 

정말 웃픈 현실이다.

도대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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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있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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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서는 처음부터 조커였다. 다만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아서는 직업 때문에, 엄마의 바램 때문에, 혹은 '본인이 추구하는 세상' 때문에 항상 웃어야 한다

나는 이 웃음을 불필요한 희생이라 칭하고 싶다.

한낱 광대의 웃음으로 세상이 바뀌기는 커녕, 누구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기 때문이다.

아서는 본인이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믿는다.

그 누구도 사람을 죽이고 기분 좋을거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본의아니게 정말 순한 사람이 되어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지 모르고, 뭘 좋아하는지, 뭐가 웃긴건지, 뭐가 슬픈건지조차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웃으면 그게 정답이고, 많은 사람들이 욕하면 그건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어도 웃어야하고, 함께 욕해야 한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른 모든 일들을 '억지로' 하고있기 때문에 아서는 정신병이 있다.

그로인해 이미 충분한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그걸로도 모자라 답답한 상황이 오면 담배를 피운다.

필자는 흔한 한국 조폭영화에서 담배피우는 장면이 나올때 그저 드는 생각이 '아 담배 맛있게 피우네 나도 피우고 싶다' 지만 이 영화에서 아서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봤을 때, 왠지 나도 한대 피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만큼 현실은 암담했고, 그의 답답함을 표현해내는 배우가 존경스러울 경지에 이르렀다.

 

 

  이 영화 속 아서 '잃을 것'이 있다.

광대라는 직장과 그 일로 생활을 겨우 이어가는 가족, 그로부터 나오는 꿈, 그리고 희망.

 '잃을 것' 으로부터 아서는 영화 초중반 내내 고문을 당한다.

정말 잔인한 고문, 바로 희망 고문이다.

 

 아서는 이런 고된 상황속에서도 노력 이라는것을 했다.

정신질환과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기 위해서 본인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영화 시작부에 어린애들에게 농락을 당했어도, 직장 상사의 불신에도, 일하던 중에 저지른 실수 후에도, 직장동료의 뒤통수에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노력했다.

 

길고 길었던 헛된 믿음과 노력배신으로 돌아오는 순간, 이제 더이상 직장 동료가 총을 건내줄 때의 내숭의 말들은 더이상 필요없게 되었다.

배신은 자신이 끔찍히 믿어왔던 엄마와 그토록 존경했던 TV쇼의 MC에게도 해당이 되었고 

심지어 살인을 저지른 조커를 지지하는 세력까지 생겨나자, 선과 악의 지표가 더욱 애매해지고 TV쇼에 출연했을 때 자신이 존경하던 인물마저 살해하고 만다.

 

 

 

'제목과 머릿말의 의미.'

 

아서는 타인으로부터 오는 존중과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뭔가 바뀌었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버스에서 아줌마가 한번 웃어주며 살갑게 했더라면',

'직장 상사가 조금 더 믿어줬더라면',

'토마스 웨인이 조금만 더 안타까운 척이라도 해줬더라면'

 

하지만 절대 저럴일이 없다.

이것이 현실이기 때문.

 

저런 의식이 바뀌려면 정말 좋은 리더와 함께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적어도 지금 당장은 바뀌기 힘들 것이다. 사람의 관념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거였다면 이미 세상은 살기좋은 세상일 것이고, 아마 그 좋은세상을 죽기전에 보고죽긴 힘들 것 같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세상도 그렇다.

내가 뭘하던, 뭘 좋아하고 싫어하던 나를 깔보는 사람들은 존재 할 것이고, 나 또한 그러고 있다.

나도 분명하게 좋아하는 것, 하고싶은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이라는 거다.

나 자신을 드러내는게 한국에서는 특히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더욱.

 

나 자신을 용기있게 드러냈을 때,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에는 호불호가 갈린다.

마치 살인을 저지른 조커를 옹호하는 단체가 생겨난 것처럼.

하지만 그 고난과 역경을 겪고 비로소 하고싶은 행동을 '꾹꾹 눌린 샴페인을 터뜨리듯 터뜨리는'

영화 '조커' 속의 아서지금 답답한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뻥 뚫어주지 않았나 싶다.

 

 

 

 

 

'리뷰를 다 읽으신 여러분들께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아서는 나쁜사람일까요? 착한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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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보는 리뷰라 조금 두서없어보이긴 해도 고작 이거쓴다고 6시간 걸렸습니다 ㅠ)